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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엄마의 화이팅 상세보기

느림보 엄마의 화이팅 상세내용
제목 느림보 엄마의 화이팅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1-08 조회수 776


느림보 엄마의 화이팅



2019년 장애인일자리사업 체험수기 수상작 연재-①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01-06 16:21:27

한국장애인개발원은 장애인일자리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매년 ‘장애인일자리사업 우수참여자 체험수기’를 공모하고 있다.

2019년 공모에는 17개 시·도에서 133건의 수기가 접수됐고 심사결과 최우수상 4편, 우수상 9편 등 총 13편의 수상작이 선정됐다. 에이블뉴스는 수상작을 연재한다. 첫 번째는 일반형일자리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 김미경 참여자의 ‘느림보 엄마의 화이팅’ 이다.


느림보 엄마의 화이팅

김미경(강원도 동해시)

“빨리와 엄마”
“알았어... 가고 있잖아”

가까운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니던 늦둥이 아들 녀석이 학교버스를 타러가며 나를 조르던 모습이 어언 6년이 지났네요. 그땐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어린 아들 녀석을 볼 때면 뱃속 깊숙한 곳에서 뭉클 솟아나오곤 했지요.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예전과 다른 반신불수의 내 몸과 망가져버린 자존심으로 기도를 하는 건지 자기연민인지도 모를 통곡으로 지새운 날이 많았답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던 그 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아이가 달리다 넘어져도 뛰어가 일으켜 줄 수 없는 느림보 엄마가 되어버렸습니다.

‘엄마 언제 나아?’ 그 작은 실눈을 똑바로 뜨며 묻던 아들에게 5년 7년 10년 하며 나도 모를 대답을 자꾸만 바꾸는 거짓말쟁이 엄마로 되어갔습니다. 재활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병원에 아들 손을 잡고 다닌 지 2년여, 아이는 이제 엄마의 몸이 그전처럼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 후로 아이는 내 보호자가 되었고 잔소리꾼 아들로 변했지요. 넘어질까봐 천천히, 지팡이 갖고 가 등 쉴새없이 잔소리도 했지만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가는 날엔 학교를 쉬며 서울까지 함께 새벽 버스에 같이 오르기도 하는 착하고 듬직한 아들로 자랐습니다. 올해 중학교 1학년, 그동안 반쪽이 엄마의 몸을 대신해 신발을 신겨주고, 파나 감자를 잡아주던 아이가 때때로 심술이 작렬하는 사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장애를 입고 첫 3년, 저는 심한 우울증과 함께 사람 만나는 것도 꺼리고 삶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요. 그러던 제가 현재를 직시하며 감사하며 사는 삶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장애인 합창단에서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합창대회도 해마다 참가해서 수차례 수상도 하고 장애인 론볼이라는 새로운 운동을 배우면서 강원도민 장애인 체육대회에 참가하는 등 나보다 더 힘든 장애를 지니고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장애인들을 많이 만나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꼭 나을거야’라는 믿음은 영구적인 장애로 남아 있으리란 것을 알았을 때 흔들렸지만 그래도 나는 날마다 나아지고 있습니다. 인격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른이들의 단점도 보듬어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마음 등 비록 왼쪽 몸의 기능을 잃었지만 보이지 않는 큰 선물을 받은 셈이지요.

남편의 헌신과 사랑으로, 아들의 지극한 도움덕분에 뇌졸중과 심장수술로 두 번 죽고 살아난 여자는 제2의 인생을 마음껏 누리고 있답니다.

간호사로써 보건소에 근무한 경험이 있었던 내가 내 몸의 병을 방치해 입게 된 장애는 나에게 말할 수 없는 자존심의 상처와 자책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런 어둠을 딛고 설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왔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도 했고, 시어머님이 치매와 오랜 지병으로 요양병원의 신세를 지는 기간이 1년 이상 되어가자, 시댁의 생활비와 요양병원비등 경제적인 짐을 홀로 감당하는 남편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할 즈음, 이거야 말로 나를 위한 일자리야 라고 무릎을 치게 하는 장애인 일자리 공고를 시청홈페이지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전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늦은 출산으로 중도에 퇴직하였던 그 일들을 조금이나마 다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삘릴리리 삘릴리리”

오전 6시 반의 알람소리가 느림보인 내 몸을 자동으로 발딱 일으키게 합니다. 아침은 건너뛰고 동네 목욕탕에서 반신욕을 한 후, 정성을 들여 단장을 합니다. 다행히 오른쪽 손과 발이 자유로워 운전도 가능한지라, 경차를 직접 운전하며 콧노래도 부르고 ‘한국 관광공사, 똠양꿍’소리내며 유튜브에서 배운 맑은 목소리를 내는 발성연습을 혼자 거울보고 연습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합니다.

저는 이곳, 20대로부터 50대에 이르는 친절하고 적극적인 공무원 10여분들과 함께 근무하는 푸릇한 실내정원과 금붕어가 노니는 쾌적한 사무실로 들어섭니다. 연습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아침인사를 합니다. 예쁜 목소리와 외모를 가진 담당주사님처럼 명랑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하루의 첫 번째 목표입니다.

저의 근무처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전통시장이 서는 북평동입니다. 5일마다 시장에는 다양한 먹거리가 많아서 즐거운 점심식사를 즐기고, 직원분들이 챙겨주시는 맛난 간식을 열심히 먹은 결과, 근무를 시작한지 8개월이 되어가는 지금 급기야 체중이 5kg이나 늘어서 다이어트를 해야만 하는 지경이 되었답니다.

이곳에서 저의 업무는 복지행정도우미입니다. 일과는 저소득층가구에게 종량제 봉투를 지급하고 일주일에 한번 상담전화를 드리고 있으며 팩스나 복사기를 이용하는 민원인의 도우미가 되고 있답니다. 그 외에 주민자치프로그램신청접수를 하거나 연탄 쿠폰 지급대상자 접수 등의 업무를 돕고 있습니다.

우리 동에서는 ‘희망나눔냉장고’라는 참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단체나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기증하고 제공한 먹거리, 반찬류, 생필품들을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진정한 맞춤형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제가 보았던 어느, 실화배경의 영화에서 노숙자가 된 아빠와 아들이 먹을 것을 타기 위해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들이 우리 동에 오면 빵과 음료는 물론 팥죽이나 비누, 치약 칫솔도 가져가서 이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에,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분위기를 바짝 긴장시키는 연로한 민원인도 계십니다만, 어떤 상황에도 의연하고 친절하게,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복지행정팀원모두가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나라면 저렇게 하지 못했을텐데’라며 혼자 생각한 적도 있답니다.

이곳에서 일한지 8개월, 정말 저는 많은 것을 날마다 보고 배웁니다.

집에만 있었을 때는 알지 못했던 놀라우리만치 변한 우리나라 복지제도와 많은 서비스들, 계절 김치 담가서 나누어주고 찾아가서 직접 제공해주는 기막힌 행복빨래방서비스, 화요일에 만나는 건강체조프로그램 등 주민을 위해 봉사하고 애쓰는 우리동 복지행정팀장님과 다정다감한 팀원주사님들 모두 민원인의 요구를 척척 해결하시는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살림에 꽝인 내가 볼 때는 정말 수급자가 부러울 지경이라니까요.

또한 묵묵히 동의 운영을 위해 애쓰고 각종주민과 지역 단체들의 뒷바라지와 동의 운영업무를 도맡아하시는 동장님과 사무장님 특히 저를 포함한 직원들을 살뜰히 챙기시고 분위기 띄우시는 예쁜 사무장님 이하 직원분들 정말 충직하게 주민을 위해 봉사하시는 모습들이 저를 감동시킵니다.

아직도 저 스스로 적응되지 않은 것은 한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입니다. 장애인일자리에 도전할 당시, 한손으로 문서 작성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과 몸을 움직여야하는 일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염려와 달리 직원분들의 관심과 배려덕분에 저는 불편함 없이 일생의 큰 기쁨을 날마다 누리며 새아침을 기다리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어느새 반년이 훌쩍 넘어 8개월이 지나가고 있군요.

8시간 동안 제가 만나는 세상엔 나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 또 노약해지고 가난하여 힘들어하는 사람 등 누군가의 돌봄과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많습니다. 그들의 얼굴을 보며 인사하고 눈을 맞춥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고도 작은 일입니다. 그 분들 중에 아직도 따뜻한 정을 가지고 옥수수를 삶아 나누어 주고 직접 키운 신기한 닭의 알 맛난 것으로 손수 나누어 주시는 고마운 통장님들과 굽고 불편하신 몸으로 자두를 따서 가져다주시는 할머니도 계십니다.

그분들과 직원 모든 분들에게 저는 그저 고마워하며 받기만하는 사랑의 빚을 집니다. 종량제봉투를 나누어 주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을 때, 반쪽이인 느림보 엄마가 다시 일하며 맛보는 이 기쁨을 그분들께도 나누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매달 쪼개며 생활비를 쓰던 내가 맛있는 점심을 나를 위해 먹으며, 가끔씩 주사님들이 사주시는 최고의 장터 국수 맛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매월 초 월급이 통장에 찍히면 남편통장으로 생활비를 보태줍니다. 내 어깨가 펴지는 때이지요. 언제나 월급날은 최고의 날이지요!

자살은 거꾸로 살자가 되지요. 저도 한때는 죽고 싶을 만큼 마음이 힘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인생의 어느 고개를 넘어와 보니 그것이 건너야할 다리였음을 알게 되었답니다. 어느 작가는 운명의 호텔이라고 멋지게 표현하더군요. 끝으로 저는 암보다 더 지독한 병 뇌졸중에 어떤 분들이라도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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