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년 전 미신고 시설에서 장애인, 장애아동을 착취했던 ‘원주 사랑의 집’ 사건이 있었다. ‘사랑의 집’ 장씨는 내 자녀를 목숨처럼 사랑한다고 해서 장 목사란 이름으로 외부에 알려졌는데, 그와는 달리 추악한 인권유린 모습이 드러난 것이었다. 12년 후 이 사건에 관해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 실화 스토링 형식으로 처참한 인권유린 현실을 조명했다.
때는 12년 전 2012년 5월 27일, 원주의 대형병원에서 지하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병원 직원이 시신을 보관하는 안치실 문을 열었는데, 그곳엔 수십 대의 냉동고가 가득했다. 냉동고 앞에서 잠시 멈추더니 장성희라는 망자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그는 2002년에 사망해 그 냉동고 안에 10년 동안 갇혀있었던 터라 그런 그가 가여워 병원 직원이 제사를 무려 10년간 지내왔던 거다.
이 병원의 인근 병원 직원인 이태세 씨가 있는데, 그는 충주의 한 병원에서 일했다. 그 병원에서도 오래 방치된 시신이 있는데, 망자의 이름은 장성광이었으며, 성희 씨보다 냉동고 안에 2년 더 있었다. 성광 씨와 성희 씨는 남매 사이였고, 이들의 법적 보호자는 같은 사람이었지만 보호자인 아버지가 장례를 거부하니, 병원 측에선 그냥 이들 시신을 냉동고에 보관했던 거다.
그래서 태세 씨는 문제 해결을 위해 이들의 보호자 장씨를 찾아갔는데, 그가 있는 곳 문은 열리지 않고, 후로도 몇 번 더 찾아갔으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전화, 대화 등 모든 걸 장씨는 거부했다. 이에 태세 씨는 SBS 방송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SBS 제작진들은 장씨에게 연락했는데, 거부할 거란 예상과는 달리 그는 흔쾌히 만남을 수락했다. 이에 장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장씨가 제작진을 반가워하자, 제작진은 성광, 성희 씨 장례를 왜 안 치르냐는 질문으로 바로 본론부터 들어갔다. 이를 들은 장씨는 자녀들이 억울하게 죽었다며, 자신을 ‘장 목사’라 소개했다. 그는 1964년 어느 날, 길에서 죽어가는 아이를 우연히 구조한 적이 있고, 이 일이 그의 인생을 뒤흔들었단다. 이때부터 장씨는 장애아들을 하나둘씩 거두기 시작했고, 이게 계속되자 언론에선 그를 지적장애 아들을 입양해서 돌보는 천사 아버지로 소개하게 되었다.
다시 이전 얘기로 돌아가면, 억울하게 죽었다고 하기에 제작진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장씨는 의료사고라고 답하고, 자녀들의 죽음에 병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사과라도 받기 위해 계속 투쟁하겠으며, 시신에 남아있을지 모를 증거 보존을 위해서 장례를 치르지 않은 거란 입장을 전했다. 그런데, 제작진은 ‘사랑의 집’이란 공간을 들어가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SBS 제작진 배정훈 PD는 5월인데도, 차가운 방바닥에 사람이 사는 곳에서 나지 않는 냄새가 ‘사랑의 집’에서 나기에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팔엔 장애등급과 장씨의 전화번호가 쓰인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이걸 보며 이 사람들을 정말로 잊어버리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냐고 궁금해하는 ‘꼬꼬무’ 출연자도 있었다.
아까 장씨는 두 자녀의 죽음이 의료사고라 주장했기에, 제작진은 병원에서 사실 확인을 해봤다. 그랬더니 성희 씨의 경우는 처음에 욕창 때문에, 병원에 실려 왔지만, 욕창이 오래 방치되었기에 합병증이 찾아와 욕창을 치료하려고 보호자와 연락하려 했지만, 연락되지 않았단다. 성광씨 경우엔 극심한 영양실조에 장이 막혀서, 응급수술이 필요했지만, 장씨와 연락이 닿지 않았단다.
결국, 성광씨는 치료시기를 놓쳐 사망했고, 그제서야 장씨는 연락됐다. 그때 장씨는 보호자 동의 없이 수술하는 법이 어디 있냐고 하면서, 의료사고라며 병원 측에 돈을 요구했다. 장씨가 난리를 치기에 할 수 없이 병원 측은 무료로 장례를 치르겠지만, 장씨는 그것마저 거부했단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장씨를 제보한 사람의 증언도 나오는데, 그 사람에 따르면 매스컴이라는 위력을 장씨는 맛봤단다. 지적장애아들을 입양하고 돌보는 천사 아버지라는 내용의 방송을 보낸 매스컴으로 인해 후원금은 엄청나게 나왔으며, 장씨는 여행용 가방으로 달러를 가득 채워서 가지고 나갔다고 말이다. 그렇게 40년을 후원금을 받았는데, 그랬으면 이걸 ‘사랑의 집’ 거주인들을 위해 썼는지 자연스레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 질문이 ‘꼬꼬무’ 진행자, 출연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이 질문의 답은 ‘사랑의 집’ 거주 경험이 있었던 사람에게서 듣게 됐다. 장 목사라는 아버지 기억나냔 질문에 그 사람은 “옷을 다 벗겨요. 옷 같은 건 누가 올 때만 입혀. 남자애를 옥조에다가... 물고문을...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답했다. ‘꼬꼬무’ 진행자는 이 답변을 한 사람이 장목사가 입양했고, 뇌병변 장애가 있지만, 인지능력이 있어 사실일 가능성 높다고 말했다.
이 답변을 들으며 언론에 소개된 장목사와는 딴판인 장씨라 장씨에게 묻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음을 ‘꼬꼬무’ 진행자는 밝힌다. 그리고선 제작진이 다시 ‘사랑의 집’을 찾아간 장면을 보여준다. 제작진을 보자 장씨는 강도하러 왔냐고 했고, 제작진은 얘기 좀 나누자고 했다. 그러나 장씨는 내 자식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휴대폰으로 112 전화를 하더니, 강도들이 있다며, 사기 치는 공갈 협박단이 있으니 빨리 오라고 경찰에게 다그친다.

맥락상 보면 장씨는 뭔가 캥기는 게 있는 게 틀림없다. 여하튼 장씨의 신고를 받고 경찰은 출동했고, 장씨는 경찰서로 가는데, 거기서 그는 억울하다며 서장실을 찾아가나, 경찰 관계자는 서장님 안 계시니 다른 분 찾아가시라고 그에게 말한다. 경찰서에서 제작진은 장씨에게 10년째 냉동고에 방치된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냐고 반문했고, 그는 명예훼손이라며 제작진을 위협한다.
결국, 그렇게 12년 전 2012년 6월 8일, 40년 동안 숨겨진 장씨 비밀은 장애인에 대한 인권유린 등의 악행임이 방송을 통해서 드러났고, 이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이로 인해 장씨에게 자녀를 맡긴 가족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 가족 가운데는 32년 전 장씨 명성을 듣고,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 광동이를 맡긴 조영실 씨도 있었다.
아들을 찾으러 조영실 씨는 ‘사랑의 집’을 찾아갔지만, 그곳은 이미 철거됐기에 철썩 주저앉았다, 그랬기에, 그녀는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아들을 찾을 수 없었다. 방송에 나온 냉동 시신이 내 아들이 아닐까 하는 불안함 속에 조영실 씨는 그저 눈물만 흘렸는데, 어느 날 DNA 유전자 검사를 통해 사망한 시신 유전자와 조씨의 유전자를 대조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 병원에 안치된 사람 이름은 장성광이고, 유전자 성적표를 보니 100% 일치했단다. 그러니까 장성광의 본명은 이광동이었던 거고 조영실 씨의 아들이었던 거다. 조씨는 차가운 냉동고에 있었던 아들 시신 옆에서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떡하냐며, 엄마를 찾아오지 그랬냐며 통곡한다. 광동씨는 엄마가 찾아주길 오랫동안 바라지 않았을까? 이 일이 있은 후, 장씨에게 아이들을 맡겼던 엄마들이 다 같이 ‘사랑의 집’을 찾아가게 된다.
아들 김유환 씨를 ‘사랑의 집’에 맡겼던 정순례 씨는 아들 좀 보자고 했고, 김유환씨 누나는 동생 있냐고 물어보지만, 장씨는 모른다는 대답만 해댔다. 옆에 있던 장씨 부인은 누군가를 때리며 폭력적으로 엄마들을 대했고, 장씨는 엄마들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서에서 그는 자신의 아들이 ‘사랑의 집’에 맡긴 한 엄마 아들이라고 하면 뭔가 신원을 밝혀야 한단 입장을 보였다.
이에 당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서동운 국장은 유전자 검사 결과물 보고 친모가 확실하면 장례 치르게 해주자 했고, 장씨는 당연하다고 응수했다. 서 국장이 친자가 맞단 결과물이라고 하더니, 장씨는 가짜 서류라며 결과물을 찢는 어이없는 행동을 한다. 장씨의 언행을 본 장애인단체와 원주 가정폭력 상담소는 ‘사랑의 집’에 있던 네 분을 구출하기로 하고, 이들을 곧장 시설로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의 집’ 거주인과 관련해 서류상 21명을 유지하기 위해 제멋대로 자녀들의 성별과 이름까지 바꾼 정황이 추가로 드러났다.

‘원주 사랑의 집’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지 6개월 된 2012년 12월 장씨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그때, 장씨는 휠체어를 타면서 난데없이 췌장암에 걸렸다고 주장했지만, 그건 자가진단이었다. 그는 감금, 폭행, 횡령, 사체 유기,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는데, 징역은 겨우 3년 6개월을 받는다. 피해자 상진씨의 증언 말고는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3년 6개월이 지난 2016년 장씨는 출소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유투브 채널을 열며 자신의 자식을 만나보고 싶다며 울기까지 하는 동영상을 올린다. 얼마나 억울했는지 장씨는 법원 재심에 헌법소원까지 냈단다. 하지만 올해 2월 장씨는 사망했다. 그럼에도, 장씨는 사망하기 2주 전까지도 ‘사랑의 집’에서 소위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아다니는 행동을 했단다.
그래서 제작진은 ‘사랑의 집’ 피해자분들에게 조심스럽게 연락했는데, 이들은 만나도 괜찮다는 의사를 전했다. 만났더니 이들은 행복해한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천사는 장씨가 아닌 두려울 때마다 서로를 지켜주던 피해자들이었던 거였단 결론으로 ‘꼬꼬무’ 원주 사랑의 집 관련 이야기는 종결된다.
이 스토리텔링을 보며, 장씨란 한 인간이 얼마나 악랄할 수 있는지 상상이 안 갈 정도였다. 친모가 맞으면 장례를 치르자는데 동의했으면서 친자 입증 증거를 보여주니 가짜 서류라고 찢어버리는 모습을 보면 소시오패스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느껴져 기막힐 정도다.
‘사랑의 집’에 거주했던 적 있는 사람이 남성 거주인을 물고문했다고 중언한 걸 생각하며, 장애인단체가 그곳을 방문할 시, 장씨 부인이란 작자가 폭력을 행사했던 걸 보면, 실제 그곳에 거주한 장애인들은 인간으로선 상상을 초월한 정도로 모욕적 대우를 받았을지 생각만 해도 화난다.
더구나 ‘사랑의 집’ 거주인을 21명으로 등록했는데, 같은 이를 여러 사람으로 호적에 등록했고,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나, 2억 정도 국가보조금 받고, 5억 상당의 후원금을 무려 40년 동안 받았다는 건 장애인을 권리 주체이자 존엄한 한 인격체로 보는 게 아닌 단지 돈벌이로 본 거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돌본다는 명목으로 한 사람당 국가보조금이 들어오는 구조니, 장애인 수가 많을수록 돈이 많아지는 거를 장씨는 악용한 거다.
여기에 사랑의 집은 정식으로 40여 년간 행정기관 조사 제대로 받지 않았단다. 왜냐면 미신고 생활시설이었기에 그렇다. 미신고 생활시설은 보건복지부의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실태조사에서 제외된다. 이 시설과 관련해 의무적인 인권실태 조사 권한이 정부에 없단 말이다. 이들 시설의 경우 종교적 목적의 종교단체가 많고, 이들은 시설이 아니라며, 정부 간섭을 싫어하는 게 있다.

그러나, 이들도 국가의 역할을 대신해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보호하는 거라, 미신고시설을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실태조사에 포함시키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물론 시설은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앗아가고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속성이 있기에 시설수용은 복지서비스가 아닌 감금이 맞지만 말이다.
그런데 현재 국가와 지자체 정책이 '원주 사랑의 집’과 같은 미신고시설을 언제든 부추기는 현실이라, 이번 ‘꼬꼬무’이야기를 그냥 흘려보내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왜냐면 지역사회에 기반하며, 장애인의 존엄성을 증진하는 건 물론, 이들의 욕구와 의지, 선호를 존중하는 서비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장애인의 자립을 위한다는 활동보조서비스의 경우도, 서비스 수급자격을 결정하는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가 기능 제한 등의 문항이 많아, 신체장애 중심에 능력주의에 기반한 차별적 기준의 조사표라, 수급자격에서 탈락하는 지적·자폐성·심리사회적 장애인이 상당히 많다. 장애 유형별로, 개인별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조사표가 아니라 예산으로 제한하는 조사표란 말이다.
‘사랑의 집’으로 자녀를 보낸 부모들 가운데는 생활 형편이 어려워, 그곳으로 보낸 부모들도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 보전해 경제적 부담 경감을 목적으로 지급하는 장애아동이 있는 가정의 장애아동 수당 경우도, 돌봄 요구가 적은 장애인 가정의 경우엔 2-10만 원, (돌봄) 요구 큰 가정 경우에선 7-20만 원 정도 한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평균 생활비도 오르는 시점엔 이런 정도의 비용 가지고는 너무도 턱없이 부족하다.
더군다나 가족을 지원하는 서비스들은 예산에 따라 제한하는 성격들이 짙다. 가족휴식 지원사업도 발달장애인법에 따라 예산으로 지원자 수를 제한하고, 장애아가족양육지원사업의 경우엔 중위소득 120% 이상의 경우엔 서비스 이용료의 40%를 자부담해야 하므로 가정에 부담이 상당하다. 120% 이하의 경우엔 전액 지원이지만, 높은 지원 필요(High support needs)가 있는 가정에 지원하는 데다, 서비스 제공시간이 1년에 1080시간이라 이를 하루로 환산하면 1일당 약 3시간이라. 적어도 부모들이 평균 8시간 요구하는 점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또,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관련, 부양의무자 기준이 생계급여, 주거급여 등에 대해선 폐지됐지만, 의료급여 등에 대해 완전폐지는 아니다. 장애인 부양책임을 오롯이 가족에게 전가하는 구조는 여전한 셈이니, 이런 식이면 생활고로 인해 가족과 장애인 동반 자살 비극은 계속될 것임이 우려된다. 이렇게 가족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장애인과 그 가족의 욕구, 선호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장애인 부양의 책임을 가족에게 일차적으로 전가하는 시스템 또한 여전하다.
2년 10개월 전, 2021년 8월 2일엔 정부에서 ‘탈시설 로드맵’이란 걸 발표했다. 문제는 이 로드맵이 탈시설에 20년이 소요될 정도로 너무도 느린 데다, 탈시설의 결과가 장애인 공동생활가정 확대라는 거다. 공동생활가정이라는 게,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빼앗는 구조고,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선 이마저 시설로 보고 있다. 그리고 시설로의 장애인 신규입소 금지라는 문구는 없고, 시설 신규설치 금지만이 명시됐을 뿐이다.

더구나, 지역사회보다도 시설에 지원하는 국가 예산이 수백 배 더 많은 건 2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장애인의 욕구, 선호, 의지에 기반하고 예산이 충분하고, 장애인의 존엄성을 증진할만한 서비스가 지역사회에 거의 부재하고, 지역사회보다 시설에 지원하는 예산이 많고, 시설 신규설치 금지만 명시되고 시설로의 신규입소 금지는 언급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지역사회에서 정착할만한 곳이 없는데. 시설 설치 신고하면, 불법이 되는 거니, 이런 상황에선 미신고시설 양성화를 부추기게 된다. 그러니까 모든 시설수용 종식 및 시설 폐쇄하자는 탈시설 가이드라인과 장애인의 자립, 연립을 전제로 장애인 거주의 자기결정권, 선택권을 도모하자는 장애인권리협약 19조를 정면 위반하게 될 여지가 상당히 높은 상황인 거다.
장애인 인권침해와 관련한 판결만 해도, 증거가 부족하다고 하거나, 설사 진술을 한다고 해도, 인권침해 피해자인 지적·자폐성·심리사회적 장애인의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이들 자신이 당한 피해를 제대로 배상받기 어려운 현실이다. 신빙성이 떨어지고, 지적능력이 부족한 건 장애 특성에 기인한 것인데, 이걸 존중하지 않고, 진술에 신빙성이 있어야만 진술을 인정한다는 것은 순전 신경 전형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고, 그만큼 장애에 대한 감수성과 이해가 사법부에 많이 부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군다나 미신고시설 등 시설에서 당한 인권침해에 관해 진술의 신빙성 확인을 명목으로 피해 당사자에게 진술을 반복하라고 하면 이들에게 상당한 트라우마를 입을 걸 강요하는 거나 마찬가지라, 반인권적이라 본다. 신빙성 의심하는 것 없이 이들의 생존경험을 들으며 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등 트라우마 인지적인 방법으로 시설수용 진상규명을 추구하는 방식을 호주와 뉴질랜드 등지에선 이미 시도하고 있다. 물론 완벽하진 않으나. 당사자들의 피해 배상 일환으론 적절하다고 본다.
트라우마 인지적이지 않은 우리나라 사법부의 환경까지 생각하면, 미신고시설 양성화로 인한 인권유린은 물론, 인권유린으로 인한 당사자들의 트라우마가 심해질 것이 우려된다. ‘원주 사랑의 집’과 같은 미신고시설 인권침해는 제2, 제3으로 계속 이어질 환경이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미신고시설 인권침해’다. 얼마 전에도, 미신고시설 인권침해는 발생했는데, 기사 내용 일부만 인용해 보겠다.

중증 지적장애인 김경민 씨(가명)는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소재 미신고시설 ‘평강타운’에서 거주하다 2020년 3월 8일 사망했다. 활동지원사 정아무개 씨에게 폭행당한 후 병원에 입원했지만 끝내 숨졌다. 정 씨는 상해치사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나, 형량은 5년에 그쳤다. (출처: 미신고시설 장애인 학대 사망, 2심도 “국가 책임 없어”, 비마이너 2023년 1월 19일 기사)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인장연)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부평구 종교시설에서 불법적으로 운영해온 미신고시설에서 장애인 10명이 구출됐다. 당시 장애인들은 손발이 줄로 묶여 있고, 몸에 상처가 있는 등 학대 정황을 확인했다. 종교시설 관리자 60대 A씨는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출처: 부평구 미신고시설 장애인 학대... 인장연 “피해자 일상회복 지원”. 뉴스클래임 2023년 9월 22일 기사)
그래서,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실태를 종합적·체계적으로 하되 미신고·미인가 시설을 실태조사에 반드시 포함시켜, 이 시설의 인권침해 현황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돌봄 요구가 큰 장애인 등 장애인 관련 지원과 가족지원 서비스에 있어선 예산이 충분함은 물론, 장애인과 그 가족의 존엄성을 고취하고 이들의 욕구, 의지, 선호를 고려한 인권적 모델에 기초한 지역사회 기반 지원체계로 재설계해야 함은 계속 강조해도 두말할 필요가 없을 거다.
그리고 시설 인권침해와 관련해 트라우마 인지적인 방법으로 시설에 살았던 경험이 있는 생존자와 시설에 거주하는 거주인의 진술 신빙성을 따지는 것이 아닌 이들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경청하는 등의 진상규명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또한, 인권침해 가해자들이 반성했다거나, 피해자에게 의식주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형량을 줄인다든지 하는 식의 비상식적인 판결이 나오지 않게 하는 등 장애인의 삶과 권리, 장애 특성 등에 대해 법원 등 사법부가 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훈련 수준의 교육을 받는 게 필요하다고 하겠다.
아울러 미신고시설을 포함한 시설 인권유린과 관련해 사실만 얘기하는 것을 뛰어넘어, 인권침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에 대한 분석은 물론이고, 인권침해는 인권침해라고 확실히 말하는 보도들이 많았으면 한다. 그럴 때, ‘원주 사랑의 집’ 인권침해와 이와 비슷한 제2, 제3의 미신고시설 인권침해는 줄어들어 결국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까지 이를 실마리가 보인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도 서울시는 탈시설에 제동 걸며, 탈시설 방향에서 퇴행되는 정책을 펼치고 있고, 이는 국가도 다르지 않다. 그런 상황이라면, 미신고시설 인권침해는 앞으로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한편,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출연자들은 자녀를 키우기 어려운 부모가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라에서 장애인을 돌보고, 나부터 선진의식을 실천해야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진행자들은 미신고시설 실태가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것이 인권침해를 키웠고, 우리 안의 편견 같은 것들이 열려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들을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미신고시설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근본적 요인들을 심도 있게 분석하며, 이야기들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긴 했다. 12년 전과 비슷하게, 미신고시설 인권침해가 심각한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걸 생각한다면 말이다. 물론 방송에서 요인 분석을 기대하긴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냉철한 분석이 없었기에, 뭔가 사건이 흥밋거리로 소비된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장애인도 존엄성을 지닌 한 인간인데 말이다.
어떤 미신고시설은 선한 목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곳도 있기에, 인권침해하는 미신고시설 때문에 욕을 먹을 수는 없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들에게 잔인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장애인 당사자 입장에선 시설은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뺏는 곳이라 시설 폐쇄는 이뤄져야 함을 말하고 싶다. 우리도 선택하고, 권리의 주체로 살고 싶고, 그래야 하는 존엄한 인간이니까.
아무튼, 이 프로그램을 다시 보며, 미신고시설이든 신고시설이든 모든 시설수용은 복지서비스 아닌 감금임을 다시금 느끼고 확신하게 된다. 시설수용 거주인들과 생존자들의 인간 존엄성 회복은 언제 이뤄질 것인가? 이들뿐만 아니라 차별이 만연한 지역사회에서 우리 장애인들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유지하고 존엄성이 위협받지 않게 되는 건 언제쯤 가능하려나?
아마 계속되는 끈질긴 싸움이 될 거 같다. 그 싸움에서 승리할 그 날을 위해 조금이라도 한발 한발 나아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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