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명에 ‘편의증진’ 없애고 ‘이동권 보장 위한 법’ 명시
비행기, 항공 등 ‘모든 교통수단’에 대한 이동권 보장 약속
특별교통수단, 하루 16시간 운행 위해 1대당 운전원 2.5명 배치
지자체 떠맡기지 말고 국가가 예산 지원… 이행 안 하면 벌금
운수종사자 교육 통해 ‘이동지원서비스 제공’ 내용도 담아


교통약자법 전부개정 토론회가 18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왼쪽에서 두 번째 사람이 교통약자법 전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 강혜민 
교통약자법 전부개정 토론회가 18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왼쪽에서 두 번째 사람이 교통약자법 전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 강혜민 

‘교통약자법 전부개정안’의 구체적 내용이 공개됐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없애고, 교통약자 이동지원을 위한 국가 차원의 시스템을 마련한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다. 문제는 예산이다. 법안을 논의하는 토론회 마지막에 ‘교통약자 이동지원차량’ 인건비 지원에 관한 질문에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여전히 중앙정부는 인건비 지원은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답했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아래 교통약자법) 전부개정 토론회가 18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교통약자법 전부개정안을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대표발의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가 공동주관했다. 개정안을 공동발의한 의원 21명은 토론회 공동주최로 이름을 올렸다. 법안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국토교통위원회 간사 문진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10여 명의 국회의원들이 토론회장을 찾았다.


시작에 앞서 서미화 의원은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은 국제사회의 주요 흐름”이라면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22년 대한민국 정부에 국가 차원의 포괄적인 접근권을 수립하라고 권고했다. 교통약자법이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법률’로 나아가기 위한 논의의 자리를 마련하게 되어 기쁘다”고 밝혔다.


법안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공동발의한 10여 명의 국회의원들이 토론회장을 찾았다. 사진 강혜민
이날 토론회장에는 공동발의한 국회의원들이 다수 참여해 법안에 대한 높은 관심을 알 수 있었다. 맞은 편에 의원들이 앉아 있다. 사진 강혜민

- 교통약자법 19년 만에 전부개정, 법명부터 바꾼다


전부개정안은 제안 이유에도 드러나듯, 현행 교통약자법의 한계에서 비롯됐다.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법은 지난 19년간 45차례 부분개정만 이뤄졌을 뿐, 전부개정된 적은 없다.


전부개정안은 제안 이유에서 “현재의 교통약자법은 법명에 ‘편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권리로서의 이동권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며, 법 명칭을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법률’로 바꾼다고 밝히고 있다.


전부개정안은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에 대한 이동권 보장을 명시한다. 기존에 장애인 이동권 논의는 시내버스와 지하철 중심으로만 이뤄져 왔다. 전부개정안에서는 이를 확대해 시외·고속버스를 포함한 모든 노선버스, 택시, 철도, 해운, 항공 등 교통수단별로 이동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내용을 법 조항에 구체적으로 담았다.


두 번째는 대중교통 이용에 제약을 받는 교통약자를 위한 ‘교통약자 이동지원차량’ 예산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한 내용이다. 이 차량은 대상자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설비가 장착된 ‘휠체어이동지원차량’(현재의 특별교통수단), 보행은 가능하나 시각장애인, 도전행동 등이 있는 발달장애인처럼 별도의 서비스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이동서비스지원차량’, 장거리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을 위해 지자체가 택시 요금을 지원하는 ‘단순이동지원차량’으로 세분화했다.


이재민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정책국장이 교통약자법 전부개정안의 목적과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재민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정책국장이 교통약자법 전부개정안의 목적과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러한 차량 운행이 실질적인 이동권 보장으로 기능하기 위해선 대중교통과 같은 수준으로 운행 시간이 보장되어야 하며, 필요한 때 바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관내를 이동하기 위해 바로 전화해도 한두 시간 대기는 기본이며, 광역이동을 하려면 1주일 전에 예약해야 하는 지역이 대다수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교통약자 이동지원 예산 책임의 상당 부분이 지자체에 떠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부개정안에서는 하루 16시간 운행을 위한 차량 도입·운영비, 차량 한 대당 2.5명 이상의 운전원 배치를 위한 인건비를 ‘국가 또는 도가 지원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이동권 침해는 비단 이동수단의 부족과 같은 물리적 장벽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저상버스를 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버스 기사의 불친절한 태도로 인해 승하차 과정에서 불편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 휠체어 이용자들이 저상버스 이용을 기피하는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전부개정안에서는 승하차 지원, 탑승 대기 등 교통약자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통서비스를 아우르는 ‘이동지원서비스’ 개념을 신설했다. 단순히 서비스 지원 방식에 대한 교육뿐만 아니라 운수종사자가 교통약자 당사자의 이해에 기반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인권, 교통약자의 다양한 특성 등에 대해 교육 받도록 한다. 교통약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이동할 권리’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한 개편이다. 현재는 중앙정부와 광역 단위에서 5년마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을 수립한다. 전부개정안에서는 기초자치단체까지 깊숙이 파고들었다. 국가→광역→기초자치단체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을 위한 계획 수립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동편의증진계획의 이행, 교통수단 이동지원, 이동편의서비스 제공 등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국가, 광역, 기초자치단체에는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를 설치한다. 이제까지 교통약자에 대한 이동지원은 별도의 지원체계 없이 지자체에 떠맡겨져 왔으나, 앞으로는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로 일원화하여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2021년 11월 12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국회에 교통약자법 개정 등을 요구하며 국회의사당역 1번 출구 유리지붕에 올랐다. 사진 강혜민
2021년 11월 12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국회에 교통약자법 개정 등을 요구하며 국회의사당역 1번 출구 유리지붕에 올랐다. 사진 강혜민

김기룡 중부대학교 교수는 “260여만 명의 장애인을 비롯해 노인, 영유아 등을 고려하면 교통약자는 전국적으로 1천 5백여만 명 이상으로 예측된다”면서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와 같은 서비스 전달체계 구축을 위해 교통약자 이동 지원 정책을 수립, 추진, 관리할 수 있는 행정 전달체계 마련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교통약자 업무는 국토교통부의 교통물류실 종합교통정책관 산하의 생활교통복지과에서 담당하고 있는데, 해당 부서 담당자 2~3명이 전담하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국토교통부 내 부서, 또는 지자체 산하기관으로 설치·운영할지, 공공기관 등에 위탁·운영할지 등에 대해 관계 부처와의 협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이행강제금을 교통부담금 형식으로 납부해서 교통약자이동편의기금으로 활동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 휠체어 탄 장애인, 기내화장실 이용 못 해 기저귀 찬다


최진기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경남지부장은 현행법에서 방치되어 온 비행기 등 장거리 교통수단의 현실에 관해 이야기했다. 최 경남지부장은 “돈이 없으니 저가항공을 주로 이용하는데, 비행기와 게이트 간의 브릿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엔 결국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계단을 오를 수 없어) 엎어달라고 요청했더니 안전상의 이유로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비행기에 어렵게 탑승한 이후에도 문제다.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비행기 탑승 후 기내용 휠체어로 바꿔타는데, 기내화장실이 좁아서 휠체어는 못 들어간다. 그래서 그는 장거리 여행할 때마다 기저귀를 찬다. 문제는 오래 차면 짓물러져서 욕창으로 발전한다는 점이다. 최 경남지부장은 “핀에어(핀란드 항공사)는 일반화장실 칸막이벽을 접으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이 된다. 장애인도 기내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 경남지부장은 “와상장애인은 좌석 하나로 부족해 4개 좌석을 예약해야 한다. 제주도 가는 비용이 유럽 가는 비용과 똑같다”면서 와상장애인의 항공권 보장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최진기 경남지부장이 예시로 든 핀란드 기차. 기차 입구와 승강장 높이가 같아서 별도의 도움 없이 휠체어 이용자도 승차 가능하다. 사진은 토론회 자료집 캡처.
최진기 경남지부장이 예시로 든 핀란드 기차. 기차 입구와 승강장 높이가 같아서 별도의 도움 없이 휠체어 이용자도 승차 가능하다. 사진은 토론회 자료집 캡처.

기차의 단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휠체어 이용자가 KTX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열차도우미를 불러서 리프트를 이용해야만 한다. 열차도우미가 바쁘다는 이유로 제때 오지 않아 KTX를 못 타는 일도 발생한다. 실제 최 경남지부장이 겪은 일이다.


그는 “핀란드는 기차, 트램, 버스, 지하철, 여객선 등 모든 교통시설과 플랫폼의 높이가 똑같아서 장애인도 타인에 대한 도움 요청 없이 원할 때 언제든 탈 수 있다”고 말했다.


- “운전원 인건비 지원할 수 있나” 묻자, 국토부 “기재부는 어렵다는 입장”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와 신보미 국토교통부 생활교통복지과장. 사진 강혜민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와 신보미 국토교통부 생활교통복지과장. 사진 강혜민 

질의시간에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국토교통부에 “현재는 중앙정부가 특별교통수단 운전원 인건비를 지원하지 않아서 지자체가 인건비를 모두 부담하고 있다”면서 “전부개정안에 따르면, 국가와 도, 시군구가 매칭해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운전원 인건비를 지원할 생각이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이는 운전원이 없어, 있는 차량도 활용하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2023년 하반기, 교통약자법 시행령 개정으로 특별교통수단 24시간 운행과 광역이동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중앙정부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현실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기존에 관내 이동만 할 때도 차량과 운전원 부족으로 대기시간이 한두 시간에 다다랐는데, 하루 24시간 운행에 광역이동까지 해야 하니 일부 지자체에서 광역으로 나가는 차량 수와 시간을 제한하는 등 교통약자의 이동권이 더욱 후퇴하는 양상이 발견된 것이다. 이번 전부개정안에서 ‘국가 또는 도, 기초지자체가 하루 16시간 운행에 대한 교통약자이동지원차량 도입·운영비, 한 대당 운전원 2.5명의 인건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이유다.


이에 대해 신보미 국토교통부 생활교통복지과장은 “아시다시피 저희도 재정당국(기획재정부)과 협의해서 예산을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중앙정부의 스탠스는 인건비 지원은 어렵다는 것”이라면서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 국가가 지자체에 인건비를 직접 보조하는 게 가능하다. 이를 뚫어보기 위해 다른 예산 사례를 공부하는 등의 방식으로 재정당국과 협의해야 하지 않나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