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수술을 받아 휴직기간을 마치고 다시 출근하던 날, 비어있던 옆자리에 새로운 이름표가 보였다. 복귀하기 얼마 전 새로운 직원이 왔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기에 “새로운 사람이 왔구나”라는 생각으로 오랜만에 만난 상사 및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일을 시작했다. 업무 시작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옆자리는 아직 비어있었고, 오랜만의 출근 탓에 심리적으로 분주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약간은 높은 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그렇게 하면 안되는 거야. 나이 많은 사람이 알려주면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군소리 없이 해야지. 내가 하나씩 교육시켜 줄께.”


순간 잘못 들은 말인가 싶었다. 나이 많은 사람이 알려주는 그대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는 것도 이상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해서 교육이라니, 가정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교육시켜 주겠다”라고 말한 사람은 비어 있는 내가 처음 보는 얼굴인 것으로 보아 내 옆자리 직원으로 보였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장애인 근로자였다.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이름표를 다시한번 살펴보았지만, 그의 이름 앞에 붙은 직급은 누군가를 교육시킬 수 없는 위치였고, 만약 그렇다고 해도 사회에서 서른이 다 되어가는 직원에게 반말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00씨 그렇게 얘기하시면 어떡해요? 너무 심한 것 아니에요?”라는 항의도 들려 왔지만 그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후 그가 자리에 앉으려고 하다 내 책상 옆에 놓인 지팡이에 필요 이상으로 눈길이 머무는 것을 보면서 서서히 마음속으로 전투력(?)을 높여 갔다.


그가 교육 운운하는 동안 사내에 있던 장애인 직원 중 누군가가 “저 사람은 자주 우리에게도 뭐라고 한다”는 혼잣말을 들었던 터라, 그의 입장에서 나는 새로운 얼굴이었으니 어떤 사람인지 떠보고 싶을 것 같았다. 그리고 좋지 않던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저기 무슨 일 하세요?”


조금 전까지 교육 운운하던 그가 나에게 한 첫 마디였다. 처음 말을 붙이는 자리라면 “처음 뵙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뉘앙스가 상당히 거슬렸다.


다른 장애인 직원에게 대하는 태도로 보아 그는 “몸도 이렇게 불편한데 그 몸으로 무슨 일을 하느냐”로 들렸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한마디 할까 싶었지만,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수록 한마디할 수 있는 이유는 늘어난다. 일단 대답은 해주기로 했다.


“온라인 교육 담당하고 있어요.”


“아. 그래요? 00 팀장님보다 들어온 지 오래되었어요? 직급이 뭐에요?”


“오래되셨어요?”도 아닌 “오래되었어요?”라니, 직급이 궁금하면 “혹시 사원이세요?”라고 물어보는 것이 예의라고 알고 있었다. 그는 예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저기 말이 좀 짧은 것 같은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렇게 묻는 건 예의가 아닌거 모르세요? 원래 초면에 이렇게 얘기하세요?”


정색하며 대답하는 표정을 보고 그는 “죄송합니다”라며 한발 물러섰다. 속에서 올라오는 화를 잠시 누르기 위해 탕비실을 가니 다른 장애인 직원이 한마디 했다.


“와. 저 사람 우리한테는 미안하다는 말도 잘 안하는데, 팀장님한테는 죄송하다고 하네요.”


정색하며 까칠하게 얘기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바로바로 대응이 어려운 다른 장애인들에게는 늘 까칠했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장애가 없었지만 투석을 하고 있어 장애등급을 받아 회사에 들어올 수 있었고, 사내에서 미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어느 회사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어 몸이 불편한 이들을 고용한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회사 역시 사람이 있는 곳이기에 복지카드 상의 중‧경중을 떠나 신체적 정신적 능력에 차이가 있는 장애인들이 들어올 경우, 장애인이 장애인을 상대로 갑질을 하는 경우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은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산업안전 보건교육에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이 있는 것처럼 장애인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자신과 다른 장애를 이해할 수 있도록 또 다른 의미의 교육이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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